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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기사

<극락도 살인사건> 박해일 배우는 변태하고 진화한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개봉 소식에 문득 박해일의 얼굴이 떠오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원작으로 한 영화의 주인공은 스스로에겐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지나치게 순수한 욕망만이 있는, 어른도 아이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 누가 "이 영화가 한국에서 제작된다면 주인공 역에 누가 어울릴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도 아닌데, 자동적으로 떠오른 배우 박해일의 하얀 얼굴. 이 뜬금없는 연상작용은 어쩌면 박해일의 특징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예가 될지도 모른다. 박해일이 가진 아우라(AURA)는 빛깔도 옅고 향도 약해 쉽게 기억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 홀린 듯 따라가게 만드는 이상한 종류의 기운이다.
연예인에게 흔히 보인다는 후광이 그에게는 없다. 어쩌면 그가 "안녕하세요, 박해일입니다"라고 먼저 말하기 전엔 그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히려 특별한 그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인상은 볼 때마다 새롭다. 박해일의 얼굴엔 여러 사람이 묻어 있다. 세상을 아직 모르는 소년이 웃고 있다가, 살인용의자의 억울한 눈빛이 말을 걸고, 열심히 살았으나 인정받지 못한 백수가 이죽거리더니, 이내 질투에 눈이 먼 청년이 연애를 건다.
"나는 캐릭터 배우는 아니다. 개성이 없이 평범하다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재능이자 풀어야 할 숙제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별 걱정을 다 하신다고. 자연인이 아닌 배우 박해일은 그동안의 배역을 하나씩 입고 변태한 특이한 존재라, 10년 후 쯤 박해일은 새로운 종(種)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이다.

역시나
약속장소에 등장한 박해일에게는 (심하게) 작은 얼굴 말고는 연예인임을 알아볼 수 있는 코드가 없다. 안경 너머 보이는 피곤한 눈빛이 그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배우라는 유일한 증거다. <괴물> 이후 오랜만에 인터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카메라 플래시에 다시금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좋지 아니한가>의 괴짜선생 역으로 우정출연한 것으로 2007년 워밍업을 한 그는, 외딴섬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추리극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다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명문대 출신의 성실한 보건소 소장. '성실'을 모토로 사는 인물이라고는 하나, 아마 비밀은 있을 거다. 박해일이 하니까 말이다.

녹음기 켜니 원치 않는 말 있으면 미리 말해 달라.
하하하. 인터뷰하는 사람이 그런 배려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사실 상관없다.
솔직히 배려라기보다, 기사 나오고 나서 문제 있으면 나도 힘들어져서 그런다.


음… 무슨 말인지 알겠다.

촬영일지 보니까 "박해일, 달콤한 신혼생활 뒤로 하고 섬에 갇혀 5개월간 촬영"이라고 되어 있더라.
거의 갇혀 지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에 올라간 게 5개월 동안 서너 번 정도? 서울에서 목포까지 다섯 시간, 섬까지 배 타고 4시간 정도. 이틀에 한 번 배가 있어서 촬영이 없어도 나가질 못했다. 잠깐 나와 옷만 챙겨 도로 섬으로 들어가고 그랬다.
섬 촬영이다 보니 환경은 당연히 열악했을 거고, 배우가 많다 보니 재밌기도 했을 것 같다.
재밌기도 했고, 지옥 같기도 했다. 일단 재밌었던 건 자연과 함께했던 것. 자연과 해산물, 해산물과 가벼운 약주. 개인행동을 해봤자 섬 안이니까 지나가다 만나는 잔재미도 있었고, 힘들었던 건 섬이 밀실이나 같은 공간이기 때문에 오래 있다 보니 예민해지기도 했는데, 사실 예민함에서 오는 힘도 있었다.
시나리오 읽어보니 섬에서의 실제 생활이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시나리오도 읽었나? 그럼 대강 얼버무리면 안되겠네.(웃음) 읽어봐서 알겠지만, 예민해지면서 시나리오가 가진 기운을 만들어주는 요건이 되지 않나? 영화를 떠나 현장 자체가 그런 느낌이다 보니 매치가 됐다.
박해일과는 영화 이야기 말고 딴 이야기 할 게 없을 거 같아 보여 달라고 했다.


아이고, 요샌 그렇지도 않다.

서울에서야 배우고 유명인이지만, 섬에서는 그렇지 않을 거고. 배우와 스태프들이 직접 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인으로 돌아간 느낌도 있었을 것 같다.
섬사람들은 TV에 안 나오는 배우인 나를 전혀 모른다. 그나마 젊은 동사무소 직원 한 명이 알아보더라. 나뿐만 아니라 여러 배우들이 자유로운 상태로 지낸 것 같다. 거기서도 연기를 해야 하고 일을 해야 했지만, 일선 현장에서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뭇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단기간에 빨리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주민들과도 친해졌는데, <인어공주> 때도 섬에서 찍은 경험이 있지만, 무조건 반갑게 맞이한다는 건 선입견일 수 있다. 섬에 외지인이 들어오는 격이라 낯설어할 수도 있고, 섬에 들어와서 자유로운 느낌에 추태를 부릴 수도 있기 때문에, 초반에는 낯설어할 수도 있다. 영화를 찍으면서 주민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 워낙 김인문, 최주봉 선생님은 또래의 중년 주민들이 잘 알아보고 좋아하셨다. 쿠웨이트 박! 여전히 스타다.
추리물은 우리나라에서 잘 되는 장르는 아니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등장 인물도 많고 상당히 복잡한 형태의 추리물인데, 하고 싶었던 이유는 뭔가?
계기를 말하는 건가? 우선은 처음으로 대하는 게 시나리오인데, 처음엔 쉽게 넘어가다가 갈수록 긴장감이 생기더라. 워낙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복잡하기도 하지만 속도감이 있어서, 마무리 느낌이 낯설면서도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데, 등장하는 배우도 많고, 최주봉, 김인문, 성지루 등 다들 한가닥 하는 배우들이다 보니 갈등이 있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처음엔 감독님이 장편 호흡을 벅차했지만, 서서히 조율되고 합이 잘 맞았다.
미스터리물이다 보니 나름의 비밀이 있겠지만, 보건소 소장인 우성이란 인물이 겉으로 보기엔 꽤나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인물로 보인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인물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 읽었다고 하니 조심스럽다. 앞으로는 시나리오 받아도 마지막 10장은 찢어놓고 봐라. 하하하.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인다면 다행이다. 초반부에 캐릭터 잡기가 약간 어렵긴 했다. 계속 끈이 이어진 느낌을 줘야 하는데, 톤이 끊길 수도 있는 인물이라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나치게 장르적이거나 코믹하게 가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범해 보이지만 뭔가 있어 보인다는 건, 지금까지 박해일이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 아닌가?
순수해 보이는 애가 사기 치거나 뒤통수 칠 것 같다는 뜻인가?
사실 순수해 보이지만, 약간 변태 같은 모습도 있지 않나? 물론 배역 때문이겠지만. (웃음)
서서히 그렇게들 본다. 처음엔 모르다가 이제야 숨겨져 있던 모습을 발견한 거지. (웃음)
박해일도 그런 면이 있겠지. 얼굴처럼 순수하지만은 않지 않나?
당연히 한 인간으로서 다양한 면이 있다. 마주앉은 당신도 순수해 보이는 듯 하나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는 거 아닌가?
흠…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 배경이 80년대인데, 워낙 치열했던 시대다 보니 영화 속에 시대상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너무 깊게 그려지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을 살리려면 아무래도 시대적인 느낌을 완전히 죽이고 갈 순 없었다. 시대가 주는 암울함, 폐쇄적인 분위기, 수직적인 인간관계 등 섬도 하나의 사회다 보니 그 분위기는 엿볼 수 있을 거라 본다.
지금 생각하니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그렇고 <소년, 천국에 가다>도 그렇고 80년대가 배경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나한테 그런 정서가 많이 보이나 보다. 지금의 30대 중후반 감독들이 방황하던 시기의 얼굴이 나와 대입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야 80년대는 아주 잠깐 살았을 뿐, 90년대 초중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90년대 중반 학번은 낀 세대 아닌가? 80년대 학번처럼 치열하게 투쟁하지도 않았고, 2000년대 학번처럼 현실적으로 열심히 살지도 않은.
94, 95학번까지 그럴 거다. 딱 내가 그런데, 80년대 학번 감독들과 어느 정도 대화는 가능할지 모르나, 디테일한 이야기가 나오면 슬그머니 빠져야 한다. 화장실 가야지, 뭐.


나는 캐릭터 배우는 아니다. 어느 쪽이나 장단점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색깔이든 입힐 수 있는
생수처럼 왔던 건데,
계속 나이가 들면서도
물처럼 있으면 안 되겠지. 내가 무언가 찾아서
좀 더 밀도 있게 가야겠지.

행여나
그가 "내가 스타도 아닌데, 사진은 아무렇게나 찍으면 어떠냐"고 말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는 사진 촬영에 적극적이었다. 포토그래퍼의 요구에 두 시간이나 군말 없이 성심성의껏 웃어보인 그에게 맥주 한 잔을 건넸다. 종이컵에 따라 달라는 그에게 "그거 너무 소박한 거 아니냐"고 물으니 원래 소박한 게 좋단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종이컵을 들고 있으면 사진을 봐도 내용물이 뭔지 모르지 않냐고. 종이컵에 든 (물을 가장한) 맥주, 꽤나 박해일다운 발상이다.

<연애의 목적> 시절 인터뷰를 보니, 작품을 끝낼 때마다 캐릭터가 지문처럼 남는다는 말을 했더라.
당연하다. 그 이야기를 할 때는 한 작품씩 해 나가면서, 그 기운이 단 1%라도 축적이 되더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작품을 정말 많이 했을 경우에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변태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배우는 그게 가장 심한 직업일거다. 얼마 전에 박중훈 씨가 쓴 글을 보니 배우는 사람이 일생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하는 극단적인 경험을 한 영화 안에서 몇 달 안에 끄집어내야 하는 직업이라 감정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서 그걸 조절하는 관록이 필요한 거다. 경험이 많을수록 도서관에서 책 꺼내듯이 감정을 꺼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계에서 박해일은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다. 박해일, 조승우, 류승범은 젊은 남자배우 트로이카 아닌가?
난 결혼했으니 빠지고, 둘이 쌍두마차로 가야 할 거 같다. (웃음)
연기파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부담도 클 것 같다.
그거는 정말이지,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걸 잊는 건 참 힘들지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얼굴이 달아오른다. 거기서 자유로워지는 게 중요하다. 배우는 계속 비워내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그런 부담감은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래서 스타를 향한 플래시에서 벗어나서 생활하는 건가? 얼마 전엔 동네에서 트레이닝복 입고 자전거 타는 사진도 찍혔더라.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자전거 타는 사진은,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우연히 찍힌 것뿐이다. 다들 일 없을 땐 '츄리닝' 입지 않나?
고정된 이미지가 없다는 건 배우로서 강점이자 약점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언젠가 그게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 않나?
맞다. 나는 캐릭터 배우는 아니다. 어느 쪽이나 장단점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색깔이든 입힐 수 있는 생수처럼 왔던 건데, 계속 나이가 들면서도 물처럼 있으면 안 되겠지. 내가 무언가 찾아서 좀 더 밀도 있게 가야겠지.
혹시 얼굴 탓도 해봤나? 얼굴이 너무 어려 보이는 게 단점일 수도 있지 않나?


콤플렉스는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 인정하고 가려고 한다.

농담처럼 "난 머리가 너무 작아 무언가 차고 들어갈 용량이 크지 않다"고도 했던데.(웃음) 사실 얼굴이 너무 작다. 같이 일하는 여배우들이 부담스러워 할 거 같다.
그건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거란다. 사진 찍을 때 여배우들이 한마디씩 한다. 그러면 앞으로 가야지, 뭐.
그동안 역할이 조금씩은 지적인 면이 있었다. 교사, 대학원생, 명문대생 등등.
별로 똑똑하지도 않고 학력도 안 좋은데, 생긴 건 이렇게 생겨 먹었으니 충돌이 많이 온다. 거기서 오는 부담감이 사뭇 크다.
액션을 해보지 그러나?
그런데 액션은 또 내가 안 좋아한다. 하하. 누굴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게 쉽고 편하다.
출연작에 대해 궁금한 것 한 가지씩 물어볼 테니 대답해 달라.


오케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어떻게 기억하나? 연극을 하다 처음 시작한 영화이니 인생을 바꾼 작품 아닌가?
영화의 톤을 결정하게 만든 작품이다. 연극하다 영화를 하면서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겁도 많았고 고민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임순례 감독님과 일하다 보니 사실적이고 정극적인 느낌 때문에 크로스오버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고, 이후 작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결국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1학년 교과서 같은 느낌이다.
<질투는 나의 힘>의 원상 이야기를 해보자. 개인적으로 이 영화 좋아하긴 하지만, 원상은 짜증났다. 사실 그런 남자, 주변에 많아 영화에서까지 보고 싶진 않았다고 할까?
그런 이상한 남자 많을 거다. 남자의 질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됐다. 어떤 남자들은 질투 때문에 벌어지는 자기의 변화가 다양할 수 있는데, 원상이는 그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질투의 대상을 선망하는 독특한 길을 걷는데, 여자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자들 사이에는 질투하던 대상을 선망하고 닮아가려는 흐름이 꽤 있다고 본다.
<국화꽃 향기>는 약간 '갸우뚱'이다. 꼭 박해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참여한 건 아니다. 정통 멜로라서 한 거다. 누군가를 한없이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건 좋은 경험이다. 사실 사랑이 흔해 보이지만 그 이야기를 풀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감정으로 보여줘야 하는 연기. 시작 즈음에 그런 멜로 연기를 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다면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을 거다.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조금 다른 유형으로 표현됐을 것 같다. 그 땐 순수했다.
<살인의 추억>은 순수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캐릭터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박해일 식 변태!
봉준호 감독님이 '우유 냄새나는 변태'라고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내 캐릭터는 어딘가 조금씩 변태 기질이 있다.(웃음)
<인어공주> 캐릭터는 너무 동화적이다. 가장 사랑스러운 남자라고나 할까? 그런 남자가 나이 들어 무능력한 아버지가 된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건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서 하게 된 영화다. 그리고 시나리오 받기 일주일 전 쯤 우도를 다녀온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청년 시절을 연기하긴 했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다. 정서적 울림이 컸던 영화다.
<소년, 천국에 가다> 배역은 좋았지만, 박해일의 순수한 이미지를 소모한 작품 아닐까?
나는 어떻게든 소모된다.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게 작업한 작품이다. 영화 속 네모처럼 늙고 싶단 생각을 했다. 어려웠던 점이라면 마음을 아이처럼 갖는 거였다. 말 그대로 아이 연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연애의 목적>은 박해일 캐릭터가 확장된 계기다. 느물거리고 밉살맞은, 그래서 현실적으로 보이는 남자. <질투는 나의 힘>을 보지 않았더라면 더욱 더 '뜨악' 했을 남자!
<질투는 나의 힘>의 원상이 편집장으로 하여금 화학작용이 일어나서 이유림이 됐다는 농담도 있다. 내 이미지가 확장된 게 사실이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좋아하는 사람도 꽤 된다. 박해일이란 사람을 달리 보게 하는 영화이지 않았나 싶다.
<괴물>에서의 배역은 전형적인 지식인 루저 아닌가?
그 친구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했을 거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그렇다. 위성도시 출신의 세미정장 차림의 남자. 현재 백수로 면접시험에 떨어져 술을 먹다 소식을 듣고 뛰어온 차림. 나름 청년실업 시대를 표현한 캐릭터다. 그 영화를 통해서 취업홍보대사가 됐다.(웃음) 부끄럽다.
<좋지 아니한가>의 스타일은 누가 만든 건가? 더벅머리에 미스터리한 정신세계.
내가 만약 무대인사를 했다면 "안녕하세요, 박경호 역을 맡은 정윤철입니다"라고 했을 거다. 감독님과 거의 비슷하다. 알듯 모를 듯한 허공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눈빛이나 태도가 딱 감독님이다. 연기하면서 참조를 많이 했다.
<극락도 살인사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아직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앞으로 이 영화를 어떻게 기억할 것 같나?
가장 기본적으로는 그동안 배역 중에 최고의 학력이다. S대 출신이니 가문의 영광이라 할 수 있다.(웃음) <극락도 살인사건>은 콩밥에 있는 콩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 앞으로 연기를 하는데 있어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배우로서 타율은 신경 안 쓰나? 흥행 기복이 심한 편이지 않나? <괴물>은 빼고 말이다.
외적인 면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많이 고민해 봐도 본질을 벗어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목적만 따지다 보면 허전할 거다. 타율 신경 안 쓰면 2선으로 물러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결혼도 했고, 이제 완벽하게 30대가 되지 않았나?
왜 나이를 강조하나?(웃음) 결혼하고 아직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생활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작품하는 데 있어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
이제 유명세나 인터뷰처럼 연기 외적인 일을 처리하는 박해일의 태도가 처음과는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달라졌을 거다. 좋던 나쁘던 간에 그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매순간 선택인데, 그런 선택이 쌓여가며 성향이 바뀌어가는 거고, 나이 먹으면서도 바뀌는 거다. 그런데 태생적인 기질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아주 평범한 사람의 기질. ?
에디터 김보영 | 사진 최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