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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기사

[인터뷰] <모던보이> 박해일, 낭만의 화신이 된 연기의 화신


 


<모던보이>에서 박해일은 1930년대 모던보이 ‘이해명’을 연기했다. 곱슬거리는 퍼머 머리에 파스텔톤 정장 차림도 ‘가관’이지만, 낭만의 화신으로 분한 박해일의 연기는 더욱 ‘가관’이다. 정지우 감독이 이해명으로 분한 박해일을 처음 보고 ‘가관’이라고 표현했던 것이 절대 비웃음의 의미가 아니었듯, <모던보이>의 박해일은 연기의 화신이 된처럼 두고 두고 볼 만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모던보이의 행색은 온데간데 없이 평소의 반듯한 이미지와 깍듯한 말씨로 돌아온 배우 박해일을 만났다.

원작소설을 읽지 않고 역할에 임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소설 속의 틀에서 좀 더 자유롭고 싶은 계기였습니다. 감독님께 (원작을) 꼭 읽어봐야 되겠는지 아니면 읽어보지 않고 시나리오에 충실하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감독님에게 물어보고 그런 식의 정도로 캐릭터 구축을 진행해도 될까요 했더니 흔쾌히 “그러세요” 하시더라고요. 소설 속의 틀에서 조금 더 자유롭고 싶어서 그런 방법을 택했습니다. 잃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최대한 조심스럽게, 부족한 것이 있거나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거나 호기심이 생기는 부분이 있으면 감독님과의 많은 대화, 그리고 김혜수 씨와의 대화, 각 전문 분야에 대한 스탭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최대한 만들어 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랬다라는 건 결국, 제가 가지고 있는 걸 좀 많이 활용해보려고 했다는 취지였습니다.

원작을 읽은 관객들은 동감하겠지만, 박해일 씨가 이해명을 정말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원작을 보려고요(웃음). 그런 차이도 있을 것 같아요. 원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색 각본을 거쳐서 정지우 감독님 만의 버전으로 풀어낸 것이 있다고 보거든요. 엔딩장면도 차이가 있는 걸로 알고 있고, 진짜 읽어보고 싶은 거죠. 책은 잘 모셔놨습니다.

 
 


부인도 이번 영화를 봤는지.

봤어요. 요즘 정신 없이 이런 일과(인터뷰 일정)를 겪고 있기 때문에 아직 작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얘기를 나눠보지 않았어요. “잘봤다” 정도로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별다른 얘기를 안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게 더 무섭긴 하죠. (웃음)

아무래도 이번 영화에서 선보인 웨이브 헤어스타일이 화제다. 촬영기간 동안 관리는 어떻게 했나?(웃음)

퍼머를 처음 한 경우인데 의외로 관리가 편하더라고요. 샴푸를 하고 탁탁 말리면, 어떤 식으로든 스타일이 나오더라고요. 생머리와는 다르게 떡이 져도 어떤 식으로든 스타일링이 되더라고요. 다시 (퍼머를) 하라고 하면 생각해봐야겠지만, 그러고 충분히 놀았습니다. (웃음)

백석 시인의 헤어 스타일을 모델링한 것으로 안다.

캐스팅 되고 보니 이미 각 분야 의상, 헤어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캐릭터에 어울릴 법한 버전이 준비가 되어 있어서, 저는 딱 대입만 되는 상황 있잖아요. 머리 해보고, 의상 입어보고. 그 대신 감독님에게 오케이를 받으면 촬영에 들어가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감독님이 딱 보시고 ‘진짜 가관이다, 너’ 이렇게 표현이 나오시더라고요. ‘가관’이라는 표현에 상당히 놀랐어요. 안 어울려서 그런가? 너무 오버된 캐릭터인가? 나중에 알아서 그 표현을 한 것을 생각해보니까, 해명이가 좀 초반에 경쾌하게 영화를 풀어나가야 되는, 포문을 열어야 되는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전체적으로 계속 유연하게 보여지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그게 잘 어울린다는 표현 같으셨어요.
 


영화에서 난실을 찾아 목장에 간 장면이 상당히 재밌다.

거기서부터 해명의 고난이 시작되는 포인트인데, 물론 많이 웃어주셔서 감사하지만 촬영할 때는 참 힘들었어요. 고생담으로 난실과의 난투극 장면을 많이 얘기해드렸었는데, 오늘은 목장의 배설물과의 촬영장면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곳이 실제로 대관령 목장이에요. 차를 타고 풍차를 지나가지고 올라가면 소들이 뛰어 놀아요. 굉장히 추운 날이었거든요. 10월인데도 거기는 완전히 한 겨울이더라고요. 고산지대이고 기온이 되게 급격하기 때문에 밤장면이었으니까 굉장히 춥죠. 그 장장차림 속에 찌질이 내복을 입고 있고, 쫄쫄이 이런 거 입고 있고. 거기서 제가 쓰러져야 된다는 거죠. 아시다시피 소의 배설물이라는 건 그렇잖아요. 치워도 치워도 계속 퇴적층처럼 굳어서 있는 땅들이거든요? 스탭들이 배려를 해줘서 동선 정도에만 흙을 깔아줬어요. 다 덮을 수는 없죠. 그런데, 카메라에 그 흙이 보일 거 아닙니까? 그러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배설물처럼 보이기 위해서 다시 물을 섞어줘요. 그럼 그게 어떻게 되든 범벅이 되는 거야. 그럼 결국 배설물과 다를 바 없거든요. 거기에서 미끄러지는 연기를 한번 간 것도 아니고 여러 번을 갔으니 나중에는 옷이 다 젖어서 소 배설물이 피부에 묻다 보니까 약간 독이 오르더라고요. 얼굴에 안 닿은 게 다행이었지만독이 올라서 피부도 빨개지고 냄새는 뭐 말할 것도 없이 고생 많이 했죠. 여벌의 옷이 딱 한 벌더 있었어요. 그 두 벌 안에서 해결을 해야 되는 거기 때문에 굉장히 긴장됐죠. 이 장면이 보여질 때는 웃기지만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긴장되는 장면이었어요.

목장 장면과 함께 기념식장 장면도 이해명이 스크린을 장악하는 장면이다. 두 장면 모두 슬랩스틱 연기를 하고 있지만 기념식장 장면은 특히나 웃음이 나면서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기념식장 장면이 사실 정말로 어려웠던 장면이었거든요. 해명의 마지막 선택에 대한 장면이니까요. 생사에 대한 개념 자체를, 또 난실에 대한 개념 자체를 오기 전까지, 또 와서도 얼마나 생각했겠어요. ‘이거 해 말어, 해 말어’ 이런 생각도 했을 거 같아요. 결국 선택하고 침묵이 흐르고, 갑자기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걸어 가고, 그 전에 아버지를 봤죠. 3자 입장에서 봤을 때 해명이 진짜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건 선택을 하기 위해 아버지 또한 걸러내더라는 거죠. 제 옆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면 별로 친해지고 싶진 않아요. 그런 독특하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운이 있잖아요. 그 장면을 보고 굉장히 슬펐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가 하면, 정말 뭐 그런 사람이 있을까 현실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시는 분들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얘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함께 출연한 김혜수 씨와는 어땠는지, 한번 같이 출연하고 싶었던 배우였나?

그럼요, 남자 배우라면 다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배우시죠(웃음). <좋지 아니한가> 때는 뵌 적도 없고, 영화 속에 같이 담겨 있긴 하지만 같은 장면에서 한 프레임 안에 나온 적도 없었고 이번 작품에서 처음 뵌 거죠. 제일 처음 김혜수 씨를 본 이미지는 어느 CF 속의 원피스 치마에 단화 신고 긴 생머리 청순 스타일. 아이스 하드바 광고였나?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에서 접한 거였고, <장희빈> 같은 사극 속의 이미지, 영화는 , <얼굴 없는 미녀> 포스터 속의 이미지, <타짜>의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 이미지는 제가 이 생활을 하지 않았을 때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한 프레임 속에 담길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웃음) 그거 자체로도 영광이죠.

<인어공주> <소년, 천국에 가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고, <모던보이>가 본격적인 시대극 출연작이 아닌가?

제가 80,90년대를 많이 했나 봐요. ‘현재 사람이 좀 아닌 거 같다, 좀 구식이다 너’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모던보이>는 시대를 많이 거슬러 올라간 작품이죠. 언론시사 때 처음 영화를 완성본을 봤는데, 현재만큼 굉장히 세련된 느낌이어서 많이 거슬러 올라왔다는 생각이 잘 안 들어요. 사실 인물들이 보여주는 느낌도 그렇게 구식의 느낌이 안 듭니다.

사극출연 제의는 많이 받아 봤나?

제의는 받아봤는데… 언젠가 해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해 보고 싶고요. 선비든 돌쇠든.

선비 역할이 잘 어울릴 것 같다.

대신 뭐 나사 하나 빠진 선비겠죠.(웃음)

김혜수 씨는 캐릭터를 위해 원작도 읽고, 시대에 대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다고 했다. 박해일 씨는 캐릭터를 위해 어떤 준비들을 했는지 궁금하다.

저는 준비의 일환으로 추천을 받고 영상자료원을 찾아서 그 시대에 실제 제작되었던 영화 <미몽>이라는 작품을 찾아봤어요. 일단 놀랐어요. 왜냐면 배우들의 사실적 연기가 지금 보더라도 뒤떨어지지 않아요. 아 그땐 그렇게 연기했구나, 역사학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지금 사람 얘기하는 거랑 크게 다르지가 않더라고요. 그런 느낌들이 긍정적이고 리얼하게 다가왔고, 또 하나는 제가 서있고 바라봐야 될 그 시대 경성이 상상하기에 아주 좋은 참고자료가 됐었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크랭크업 장면이었다.

맞아요. 그게 제일 마지막 촬영이었구요. 겨울 즈음 촬영이 끝났는데 촬영지에 눈이 많이 쌓여서 촬영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전 스탭들과 배우들이 눈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에필로그를 거기서 찍었죠. 눈은 실제 눈이고 인공적으로 만든 눈이 아닙니다. 드라마 속 의미는 이런 거 같아요. 계절이 바뀌어서 해명이 어떻게 변했을까라는 얘기를 해주려는 장면 같고, 이 녀석이 초반부터 이러이러한 고난이면 고난, 감정적인 변화면 변화, 이런 굴곡을 겪다 보니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식의 에필로그가 있었던 거죠. 그 장면에서 캐릭터가 크게 아주 변한 거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철이 들려고 하는 느낌들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연출의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하나 덧붙이자면, 해명이 좀 더 어른이 될 수 있을만한 여지가 생기지 않았나 라는 장면일 수도 있을 거 같고요.

박해일의 일상생활을 궁금해 하는 관객들이 많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1년 한 해를 보자면 6개월은 보통 현장 밖에서 지내는 것 같고, 6개월 남잖아요? 6개월에 3개월은 이런 인터뷰나 후반작업으로 3개월 보내고, 그럼 3개월이 남는데, 그 3개월이 개인적인 시간이라면 9개월 동안 했던 작품 털어내고 마음을 비우려고 하는 시간인 거죠. ‘저는 매번 작품 촬영이 끝나면 뭘 해요’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어요. 그때그때 호기심 있는 것들에 심취해서 캐릭터를 털어내는 편이에요. 그게 운동일 수도 있고, 영화를 많이 찾아볼 수도 있고, 잠깐 떠날 수도 있고요.

티켓파워를 발휘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런 개념을 아직까지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기 위해서는 과정에 충실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죠. <괴물>이요? 그 영화는 괴물이 주인공이었죠. 저는 일조를 했을 뿐입니다. <모던보이>는 제가 괜찮게 읽었던 시나리오와 제가 하고 싶었던 감독과 만난 작품이고, 그 과정을 충실히 겪었고, 그 결과가 관객들에게 잘 전해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최고의 관심사에요. ‘<모던보이> 그 시대 정말 재밌게 잘 풀어놨네!’ 이렇게 봐주시면 제일 감사하고 저에겐 최고의 찬사죠. 말씀하신 물리적인 것들은 따라오는 거라고 봐요.

서울에게 가장 좋아하는 장소? 홍대 백스테이지로 올라오라고 할 수도 없고(웃음). 95년도에 자주 갔던 너구리 비디오 음악감상실이 있는데, 락만 틀었던. 서울… 서울… 글쎄요, 한강? 고수부지? 좋잖아요. 아니면 대학로가 있는 혜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