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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기사

[인터뷰] 박해일 “기 센 배우들과의 작업, 미치는 줄 알았다”


가무잡잡해진 피부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얼굴도 한층 야위어보였다. 치열하게 촬영한 신작 ‘이끼’에 대한 고충을 대변하는 듯 했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며칠 째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느라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하루 평균 7~8개의 매체의 기자들과 60cm 정도의 테이블을 두고 마주하고 있으니, 그 고충도 짐작이 됐다.

그는 스크린에서 보이는 그대로 차분하면서도 진지했다. 60분을 조금 넘긴 인터뷰 시간 내내 한번도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았다. 5년째 쓰고 있다는 낡은 ‘전지현폰’이 그의 스타일을 말해주는 듯 했다.

지난 14일 개봉한 ‘이끼’에서 박해일은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느라 외딴 마을 사람들과 대결하는 남자 ‘유해국’ 역을 맡았다. 그는 웹툰만화 ‘이끼’가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원작 팬들이 꼽은 캐스팅 1순위였다.

하지만 “기 센 배우들과의 작업에 미치는 줄 알았다”면서도 “촬영하는 내내 만화와 영화의 간극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를 고민했다”고 했다.

특히 강우석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굉장히 새로웠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연출 스타일과의 교감이 됐다”면서 “한 과목을 이수한 듯한 좋은 경험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해일은 자신의 영화 ‘이끼’를 본 소감에 대해 “지루하지 않았던 게 첫 번째”라는 겸손한 평가를 내렸다. 다음은 박해일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강우석 감독님은 남성적이다. 전작에서 알 수 있듯이 여배우가 많이 출연 할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그렇다고 봉준호 감독님을 여성적이라곤 얘기 못하지만. 또 ‘이끼’가 섬세하지 않다고 볼 수도 없다. 각자의 장점과 특성들이 너무 뚜렷하신 분들이다. 두 분 다 배우를 최대치로 끌어내는 것은 탁월하신 거 같다. 감독님들은 그런 걸 즐기신다.”

 

 
▶ 좀 말라보인다.

알레르기 때문에 9개월째 약을 먹다보니… 잘 먹고 잘 지내는데도 쉽게 돌아오지 않더라

▶ 마음고생이 심해서 몸무게 줄어든 게 아닌가?

아무래도 쉽지는 않은 역할이다 보니…

▶ 열연한 배우로서, 자신의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가.

기술 시사 때 처음 봤는데, 기술시사라는 게 스태프들과 함께 실수를 감지하는 자리지 않나. 우리 영화가 러닝타임이 좀 긴데,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게 첫번째였다.

▶ 촬영장에서 모니터를 하지 않았나

안했다. 강우석 감독님만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모니터 옆에 현장 편집기가 없다. 기존에도 그러셨다고 하더라. 배우들이 한 연기를 리바이벌해서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감독님 머릿 속에서 현장 편집이 되는 스타일이다. 컷 구성이 굉장히 빨리 돌아가시는 분이다.

▶ 그렇다면 한 번에 OK를 받은 신과 가장 많이 NG를 냈던 장면은?

처음받는 질문이다. 감추고 싶은 얘기였는데…(웃음) 거의 한 번에 간 것은 많지 않았다. 감독님이 고심 고심해서 찍어나가는 현장이어서 이렇게도 해보시고 저렇게도 해보신 것 같다. 촬영 들어가면 일사천리로 가는 스타일이라, 저라는 배우도 많이 아셔야 해서 초반엔 테이크들이 좀 더 있었다. 얘기하자면, 송곳에 찔리고 했던 장면부터는 빨리 갔다.

▶ 가장 NG가 많이 났던 문제의 장면이었지 않나.

어떻게 아셨나?(웃음) 한 서른 번 정도 갔을 거다.

▶ 그 신 이후 연기가 풀리는 전화점이 됐나.

거기서부터 절벽까지 가는 장면만 찍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짧지만 강렬한 장면을 찍기 위해 정말 힘들게 촬영했다. 김상호 선배(전석만 역)도 도끼 들고 축지법으로 막 쫒아오고… 김상호 선배도 고생 많이 하셨다.

▶ 촬영에 들어가기 전, 윤태호 작가를 먼저 만났다고 들었다.

처음 윤태호 작가를 만난 건 캐스팅이 되기 전이었다. 이미 그 전에 원작을 주변 권유로 들어본 상태였다. 정지우 감독님이 각색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밥 먹는 자리에 갔는데, 윤태호 작가님이 계시길래 ‘잘 봤습니다’ 했다. 그때 시점이 ‘이끼’가 반도 안되게 연재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때 ‘유해국’이라는 캐릭터가 모호해질 때, ‘질투는 나의 힘’ 이원상 캐릭터를 잠깐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 그때도 캐스팅은 예상 못 했다. 시네마서비스에서 책이 오고 바로 다음 날 전화 와서 ‘하자’ 그렇게 된 거다.

 

 
▶ 강우석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첫 작업이었는데.

17편 연출, 130편 가까이 제작…(웃음). 프로필, 필모그래피를 봤다. 신인감독들은 많아야 한두 작품이지만, (감독님은 그 많은 작품을 하셨으니) 명확한 스타일 있겠다 예상했다. 조율이 필요했던 시간이 초반에 필요했다. 원작 캐릭터와는 차이가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감독님은 감독님대로 끌고 가고자 했던 부분이 있었을테고, 그것대로 따라가기 위해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감독님과 한 두 작품 해본 정재영 선배는 현장 대비가 가능하지만, 내 경우는 스타일에 적응하는 게 필요했다. ‘천용덕’ 역을 맡은 정재영 선배는 기존 원작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 술 자리를 자주했다고 들었다. 일주일에 세 번?

(웃음) 세 번 이상일거다.

▶ 박해일씨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

그다지 문제는 없었다. (술을) 많이 못 하기도 하지만, 감독님이 많이 먹이진 않는다. 식사 자리에서 어울리는 정도다. 버거워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좋은 기억이다.

▶ ‘살인의 추억’ ‘괴물’을 함께 한 봉준호 감독님은 어떤 스타일인가.

비슷하다. 술자리는 많이 갖는다.

▶ 연출 스타일이 어떻게 차이가 있나? 많이들 다르다고 하던데.

(음… 한참을 생각하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다를 거다. 영화 자체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개인만의 차이? 글쎄… 강우석 감독님은 남성적이다. 전작에서 알 수 있듯이 여배우가 많이 출연 할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유해국’이 가져갈 수 있는 것도 그 안에 섞여야 되는 거였고, 그 부분에서 인정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랑 대적할 수 없었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려면. 남성적이고 끈질긴 근성이 있어야 된다고 하셔서 에너지에 대한 부분은 꾸준히 조율해 나갔던 부분이다. 그렇다고 봉준호 감독님을 여성적이라곤 얘기 못하지만. 또 ‘이끼’가 섬세하지 않다고 볼 수도 없다. 각자의 장점과 특성들이 너무 뚜렷하신 분들이다. 두 분 다 배우를 최대치로 끌어내는 것은 탁월하신 거 같다. 감독님들은 그런 걸 즐기신다.

▶ 유해진씨가 촬영을 위해 제주도 가서 혼자 일주일동안 소리를 지르며 대본 연습을 하고 왔지 않나.

몰랐었다 아무도. 제작 발표회 때 얘기해서 ‘어? 그러셨구나. 나도 시간 좀 달라고 그럴 걸’ 했다.(웃음) 토해내는 그 장면이 정말 쉽지 않은 신이다. (배우들) 모두 보고 있는데서 한 번에 OK를 내셨다. 한 번에 나올 수 없는 내용이라고 본다. 감독으로서는 배우가 그렇게 해주는 게 너무 행복할 거다.

▶ 본인은 어떤 장면에서 감독님의 희열을 끌어냈나.

잘 모르겠다. 글쎄… (웃음)

▶ 송곳으로 찌를 때가 아닐까? 감독이 그 때 눈빛이 바뀌었다고 했다.

아 그런가? 나도 사실 그 때 인 거 같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다. 완전히 몰린 상황.

▶ 촬영 끝나고 ‘강우석 과목’을 이수한 거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학점은 얼마 정도 주고 싶나?

아, 그건…(웃음)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문득 생각난 게 그거였다. 강우석 감독님과 한 작품 한 걸 빗대어 얘기한 거다. 학점이라는 건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 촬영을 끝낸 후 후유증은 없었나.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했을 듯 해서.

역할도 그렇고 주변 환경도 분위기도 그랬고. 에너지를 작게 주고받기보다 크게 주고받은 것 같다. 구도 때문일 수 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버텨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에너지를 더 충만하게 내고 좋은 선배들한테 조언 받고, 양자가 같이 가는 느낌이었다.

“ ‘슛’ 들어가기 전 예열되는 과정이 각기 다르다. 정재영 선배는 기존 배우보다 1시간 일찍 와서 준비한다. 누구는 저 구석 그림자에서 쭈그려 앉아 커피 마시면서 대본보고, 누구는 광합성을 하고, 어떤 분은 딱 촬영 때 맞춰서 온다. 10인 10색이다. 팔짱끼고 순간적으로 보고 있으면 가관이다. 대단하다. ”

 

 
▶ 현장에서 배우들 기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들었다.

어느 배우든 ‘밀리면 끝장이다’는 생각은 다들 한다. 어느 배우가 서 있어도 느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감독님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처음엔 위축되었지만, 위축될 때 위축 되더라도 일단 해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악 물고 했다. 그때만큼은 아침형 인간으로 돌아갔다.

▶ 정재영 선배는 어땠나.

전부 다 배울 점이었다. 선배가 보여주고 있는 모든 것들이. 카메라가 돌면서 보여주는 연기력의 표현력도 있지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기까지의 과정이 있다. ‘슛’ 들어가기 전 예열되는 과정이 각기 다르다. 정재영 선배는 기존 배우보다 1시간 일찍 와서 준비한다. 스태프들보다도 더 일찍 와서 그날 그날 작품을 위해 면도를 하고 비장감을 품고 시작한다. 촬영하면서 분장 때문에 얼굴이 변하기도 하는데, 다른 선배들도 다 변한다. 분장 끝나고 마당이 있는데 마당에 각기 달리 연기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누구는 저 구석 그림자에서 쭈그려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대본보고, 누구는 광합성을 하고, 어떤 분은 딱 촬영 때 맞춰서 온다. 10인 10색이다. 팔짱끼고 순간적으로 보고 있으면 가관이다. 대단하다.

▶ 영화를 보며 두 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너무 좋았다. 대사가 또렷하고 전달력도 있었다.

다들 연극과 뮤지컬로 다져져 그런지 발성이 트였다. 이야기 자체가 영화가 가진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현란한 액션보다는 사람이 가진 근성과 말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목소리는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했다.

▶ 박해일씨 이미지를 도화지 같다고들 한다. 배우로서 자신의 외모는 어떤 장치로 작용하나.

제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게 부족한, 결핍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갈 수 있는대로 감정 활용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하드웨어적인 것들은 감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먼저는 감정 표현이 중요하다.

 

 
▶ 올해로 10년차더라.

‘몇 년 됐어’ 그런 것에 의미를 안 둔다. 노련미나 관록은 경력에서 쌓일 수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제가 작품을 하면서 조금씩이라도 쌓일 것이다. 그것들은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첫 작품 할 때와 지금이 다르 듯이.

▶ 드라마 출연에 대한 생각은 없나.

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를 안방극장이라고 하지 않나. TV를 틀면 바로 다이렉트로 볼 수 있는. 시간도 빠르고, 더 중요한 것은 남녀노소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넓이와 깊이의 수위가 등급을 매겨서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 더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배우에게는 드라마 보다는 영화가 더 자유로울 것이다. 영화를 더 잘해보고 싶다. 드라마는 모르는 영역이 너무 많다. 시스템 자체에 차이도 많고, 저한테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다. 여러 번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아직은 못하고 있다.

▶ 사극이나 액션에 도전해 볼 생각 없나.

아직 제가 그쪽 시대까지는 안 가봤다. 근대 시대까지는 가봤는데. 영화에서는 제가 해 볼 수 있는 포지션이 가능한 것은 도전도 가능하고, 땡기면 가볼거다. 액션 전문영화는 아직까지 해 본 것은 없고, 액션이 들어있는 것은 했지만 액션연습을 거쳐서 오랫동안 하는 영화는 안 해봤다. 그렇게 아직 호감이 가지는 않는다.

▶ 작품을 선택하는 나름의 기준은 뭔가.

어떤 식으로든 변함이 없을 것 같은 것은 주어진 책 안에서 제가 재밌게 읽고 이야기와 작품이란 것이 호기심 있게 빠져 들어가고 그러다가 감독님이 보고 싶게 되고. 만나서 책이나 작품에 대한 상상력이나 구체적이 이야기를 불러일으키는 감독이라면 함께 하게 되는 것 같다.

▶ 감독이 친구라면 제의를 거절할 수 있나.

친구는 저에게 절대적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 결혼하고 나서 배우로서 좋아진 점은?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고들 하지 않나. 그런 거 말고 없나?

음… (한참을 생각하다)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서로에게 바라지 않고 만족한다. 이젠 가족같죠 뭐.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