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해일/심장이 뛴다

[심장이 뛴다] 촬영 현장



출근시간을 갓 넘긴 평일 오전, 서울 강남 을지병원 앞 사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한 곳을 흘끔거린다. 그곳에, 몸에 꼭 붙는 누드 톤 스커트를 입고 급박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는 김윤진이 보인다. 잠깐 담배 사러 나온 듯한 느낌의, 추리닝 차림을 한 박해일도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리고 스탭들은 차량과 사람 통제에 분주하다. "빨리 좀 지나가 주세요." "신경 쓰지 말고 걸어가 주세요." 9월 14일, 을지병원 앞에서 윤재근 감독의 [심장이 뛴다] 35회 차 촬영이 진행됐다.
 
무전기를 들고 앉아 있는 이가 윤재근 감독이다.
[심장이 뛴다]는 딸을 살려야 하는 엄마 연희(김윤진)와 엄마를 지켜야하는 아들 휘도(박해일)의 이야기다. 연희의 딸은 한시가 급하게 심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병에 걸렸고, 휘도의 엄마는 식물인간이 됐다. 연이는 휘도 엄마의 심장을 딸에게 이식하길 바라지만 휘도는 연희의 제안을 거절한다. 박해일은 [심장이 뛴다]를 "장르성을 띈 영화가 아니라 인물이 중심인, 사람 사는 냄새가 진득하게 나는 영화"라고 말했다. 박해일이 맡은 휘도 캐릭터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거칠게 자란 인물이다. 직업은 밤업소에 나가는 아가씨들의 콜을 받고 기사 노릇하는 이른바 '콜떼기'. 건들건들하지만 "자기만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캐릭터다. 김윤진은 [세븐 데이즈] [하모니]에 이어 모성애가 부각되는 역을 맡았다. 연희는 부족함 없이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왔지만 일찍 남편을 여의었다. 하나 있는 딸은 심장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진다. 그리고 딸의 심장이식을 성사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장기밀매 조직과의 접촉도 마다않는다. 김윤진은 "모성애가 부각되는 역할을 연달아 하려니 거부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영화가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집중하는 것이 신선해 출연하게 됐다고 한다.

이날 촬영 분은 67신, 휘도와 연희의 차가 병원 앞에서 엇갈리는 장면이다. 먼저 휘도의 차가 병원을 빠져나가고 연희 차가 들어온다. 차에서 내린 연희는 장기밀매 조직의 조팀장(김상오)과 김대리(백경민) 쪽을 향해 뛰어간다. 신인 윤재근 감독은 주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처럼 섬세하고, 꼼꼼하게 현장을 지휘했다. 휘도의 연인으로 나오는 수영 역의 정다혜는 "감독님이 미술을 전공하셔서인지 시각적인 부분에서 디테일을 강조하신다"면서 "감독님의 오케이라는 말에 크게 신뢰가 간다"고 윤재근 감독에 대한 믿음을 내비쳤다. 67신에서는 우선 휘도와 연희가 탄 차가 엇갈려야 하고, 두번째로 연희가 차에서 내릴 때 조팀장이 탄 차가 화면 뒤편에 살짝 걸려야 했다. 윤재근 감독은 차와 차가 엇갈리는 각도와 타이밍을 세세하게 맞췄다. 몇 번의 기술적인 엔지 끝에 카메라엔 긴박하면서도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그림이 담겼다.

오후엔 휘도의 어머니가 입원해있는 병원 복도에서 휘도와 조팀장이 만나는 78신 촬영이 이어졌다. 을지병원 한 층을 통째로 빌려 촬영이 진행됐다. 그렇다고 해도 병원의 일자형 복도는 촬영하기에 좁았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스탭들은 복도 좌우로 나있는 병실에 몸을 숨겼다. 뜨거운 조명에 화재경보기가 잠시 울리는 작은 헤프닝도 벌어졌다. 현장에서 육체적 고생은 카메라를 어깨에 계속 둘러메야 했던 최찬민 촬영감독이 짊어져야 했다. [심장이 뛴다]는 매 장면을 핸드 헬드로 찍는다. 윤재근 감독은 "인물들의 심리가 중요한 영화라서 영화 전체의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풀 핸드 헬드로 찍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유일한 단점은 촬영 감독님이 힘들다는 거다."


[심장이 뛴다]의 조정준 피디는 말했다.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의 차이는 1mm에 있다. 더 좋은 그림을 만들려는 노력, 1mm의 차이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심장이 뛴다]는 물론 이야기가 소중한 영화지만 비주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마도 [심장이 뛴다]는 박해일, 김윤진 두 배우의 연기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영화가 될 것 같다. 영화는 10월 4일 모든 촬영을 끝내고,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박스 인터뷰] 김윤진, 박해일 인터뷰

  [심장이 뛴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박해일 : 책(시나리오)이 재밌었다. 다음 작품은 장르적인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떻게 [심장이 뛴다]를 만나게 됐다. 요즘 영화들은 표현이나 스타일이 좀 거세다. 조금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어떨까 생각했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데, 진득한 향기가 나는, 인간 냄새 많이 나는 영화다, [심장이 뛴다]는. 이 시대의 분위기도 많이 담겼고.

김윤진 : 난 대본 받고 이 역을 내가 하면 좀 재미없을 것 같았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스토리 라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대본은 앉은자리에서 쑥 읽었고, 세련되고 좋았지만, 모성애가 부각되는 역할을 연달아 하려니 거부감이 들더라. 그러고 몇 달 후에 수정된 대본이 왔다. 이 영화의 장점은 사건이 위주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인물이 위주라는 거다. 인물 중심인 영화 대본은 최근에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게 신선했다. 휘도와 연희 모두 인물이 뚜렷하고 정확해서 매력적이었다.

 

 

  휘도라는 캐릭터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거칠고, 한편으로 양아치 같기도 하다. 박해일 씨가 이전에 연기한 캐릭터들 중에서도 좀 튀는 것 같다.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
   

박해일 : 대본의 지문 상에는 휘도의 배경이 설명적으로 나와 있는데, 영화 전체적으로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휘도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라온 친구고,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한다. 자기만의 희망이 있다. 직업도 있다. (웃음) 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밤업소에 나가는 아가씨들의 콜을 받고 기사 노릇하는 '콜떼기'다. 나름 열심히 산다.

김윤진 : 이 영화가 두 인물의 대결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인 대결도 건드린다. 돈이 있는 자(연희)와 없는 자(휘도). 연희는 여자니까 약자고, 휘도는 남자니까 강자다.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헷갈렸으면 좋겠다. 휘도가 나쁜 사람 같지만 중간에 보면 그렇지도 않다. 관객들이 초반에는 휘도를 외면하고 연희를 응원했으면 좋겠고, 중간에는 휘도를 응원할 것 같다. 엔딩에선 '누가 옳은 거지?' 질문하게 되고. 감독님이 말한 것처럼 인간의 본성, 과연 사람이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가는가, 정의는 무엇인가, 하고 관객들이 물음표를 던졌으면 좋겠다.

 

 

  연희는 단순하게 말해, 고생을 해본 적 없는 강남의 부잣집 여자로 비쳐질 수 있다. 전형적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김윤진 : 고민이 많았고, 감독님이랑도 대화를 많이 했다. 우선 의상에 대해서 감독님은 연희는 바지를 안 입었으면 좋겠다, 민소매를 안 입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연희라는 캐릭터가 뚜렷하지 않았다. 요즘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 하고, 능동적이다. 그런데 연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돈밖에 없다. 반면 장르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는데, 연희 캐릭터엔 공감이 많이 갔고, 현실감이 생기더라.

박해일 :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서로에게 다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모든 인물은 자신만의 기준점을 가지고 행동한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손해도 끼친다. 영화가 매우 현실적이다. 사람들이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으면 그곳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것 같다. 또 캐릭터들이 천성은 다 착하다. 인물들이 악한 감정을 끝까지 가지고 간다면 [악마를 보았다]가 되겠지. 그 정도로 피 보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심장이 뛴다]의 인물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현실적인 도구와 수단으로 움직인다는 설정이 좋았다. 휘도가 양아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글쎄, 생각보다 착한 아이다. 연희도 마찬가지로 결핍이 있고.

 

 

  연희와 휘도, 두 인물의 감정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어떤 스파크가 일어날 것 같은데, 어떤가?
   

박해일 : 처음엔 서로 말도 하지 말고, 얘기도 하지 말고 촬영하면서 딱 붙자고 감독님이 그랬다. 낯선 상황에서 어떻게 튈지 모르는 합을 그려보자고. 그건 신인 감독님의 무리지. (웃음) 하여튼 그런 식으로까지 가져가려 했다.

김윤진 : 그런데 두 인물의 대결은 아니다. 연희는 늘 부탁하는 입장이고 휘도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동등하게 대결하는 느낌은 한번도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난 매달리고 돈으로 설득하려 하는데 계속 거절당한다. 두 사람이 확 붙는 느낌은 덜 날 거다.

박해일 : 왜, 나 따귀도 때리고 그랬으면서. (웃음) 상처도 내고.

 

 

  [심장이 뛴다]로 만나기 전에 상대 배우에 대해 가졌던 인상은 어땠나. 또 만나고 나서 의외였다 싶었던 점은?
   

김윤진 : 박해일씨는 소년 이미지가 강했다. 맥주 한잔 하면서 해일씨한테 한 얘기가 있는데 진심이다. 내가 다음 생에 남자 배우로 태어난다면 해일씨 같은 얼굴로 태어나고 싶다고 그랬다. 해일씨 얼굴은 어떤 역을 입혀놔도 어울리고 상상이 가는 얼굴이잖나. 참 부러웠다. [심장이 뛴다] 대본도 좋고, 감독님 만났을 때 느낌도 좋았지만 해일씨가 결정했다는 데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런데 이렇게 아저씨 같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니까.

박해일 : 김윤진 선배가 술을 굉장히 잘 드실 줄 알았다. 기대를 많이 했다. 만날 때마다 술 해야지, 현장 너무 재밌겠다 싶었지. 딱 만났는데 '커피 한잔' 이러더라. (웃음) 이번 영화에선 자연인 김윤진의 느낌이 더 묻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인의 모습, 익숙한 일상의 모습들을 감독님이 찾아서 넣다 보니, [심장이 뛴다]에서 자연인 김윤진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