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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기사

박해일 “활시위 당기는 쾌감, 연기와 비슷”

박해일(34)은 빈 도화지 같은 배우다. 사생활은 거의 알려진 게 없는데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도 표정 변화마저 적어 좀처럼 속을 알 수 없지만 내놓는 작품마다 다양한 그림을 그려낸다.

바람둥이 교사(‘연애의 목적’), 선과 악을 넘나드는 살인용의자(‘살인의 추억’), 운동권 출신 백수(‘괴물’), 오기 하나로 아버지의 죽음에 감춰진 음모를 파헤치는 아들(‘이끼’) 등 그가 담아내는 그림들은 교집합이 없다.

그가 이번에는 거친 질감의 동양화를 그려냈다. 병자호란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배경으로 청나라의 포로가 된 누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전쟁 속으로 뛰어들어간 신궁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사극 ‘최종병기 활’에서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 역을 맡았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무척 핼쑥해 보였지만 눈동자는 매처럼 날카로웠다. 당장이라도 활 시위를 당길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극락도 살인사건’에서 함께했던 김한민 감독님이 절 부르시더니 활 한 세트를 주셨어요. 꽤 고가품이라 강조하시면서요. 배워 보면 연기하는데도, 집중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거라고요. 그게 캐스팅 하기위한 뇌물(?)이었던거죠(웃음).”

그는 국궁 기술 보유자로부터 시위를 당기는 자세와 눈의 초점 등 활쏘는 법을 배웠다.

국궁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생애 첫 사극에 도전한 그는 차츰 신궁의 자세를 갖춰갔다.

“단지 사극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하진 않았어요. 이 영화는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과 정치 중심의 정통 사극도 아닌데다, 역사적 배경만 과거시점에 두는 가벼운 퓨전사극도 아니예요. 퓨전과 정통 사극의 접점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아냈고, 활이라는 낯설지만 매력적인 소재를 주인공과 동등한 격으로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들떠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는 그에게서 작품에 대한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남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본후 사회와 등진채 누이와 살아가다, 누이마저 잡혀가자 적진으로 뛰어든다. 이 캐릭터는 ‘자연인’ 박해일과 겹치는 부분도 있단다.

그는 이 캐릭터에 대해 “내면이 강하고 자부심도 큰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가 난데없이 다시 활에 대한 이야기로 급선회했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완전히 활에 꽂힌듯 보였다.

“활은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많이 닮아있어요. 배우는 한 장면을 찍기위해 온 정신을 집중한 뒤 연기를 통해 쏟아내고 나서 ‘컷’소리에 짜릿한 쾌감을 느끼거든요. 정신을 모아 시위를 당기고 조준점을 향해 살을 쏘아낸후 느끼는 카타르시와 같은거죠. 이번 영화를 찍고나서 ‘앞으로 내 연기인생의 활시위는 언제 어느 순간에 당겨야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조준점은 특별히 없지만 쏜 화살처럼 열심히 날아가야죠.”

그는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배우 중 누구의 활솜씨가 가장 좋으냐’고 묻자 “당연히 저죠. 명색이 신궁인데요”라고 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박미영기자 my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