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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기사

박해일, “내 안에서 계속 변주하는 중이다”


-오늘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봤는데, 어땠나?

가편집본을 보고 오늘 처음 영화를 제대로 봤다. 아직 객관적인 시선은 무리고, 내 것밖에 안 보이더라. 나만의 기술시사회? 어, 그거 괜찮은 표현이다. 크하하!

-최근에 주로 블록버스터에 출연했다. 이번에는 일상적인 연기를 보여줄 줄 알았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처절한 난투극을 찍었더라. 이런 시나리오가 당기나?

좋아하는 건 맞다. 이번 영화는 그렇게 갔어야 했고. 이야기가 절절한데, 속도가 느리거나 시대적인 배경에 맞지 않으면 보기 힘들잖아. 인물도 두 사람뿐이고 강남 한복판에서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까, 감독님이 극적인 부분을 강화한 것 같다. 반대로, 지금보다 톤 다운된 영화도 서서히 하고 싶다.

-오히려 초기 출연작은 그런 작품이 많았다.

나한테는 이게 흐름인가 보다. ‘복고’란 게 있듯이 사람의 감정도 차올랐다가 사그라지잖아. 내 필모그래피에도 그런 흐름이 있을 것 같다. 내 나이대가 아직까진 끓어오르는 시기인 듯하지만.

-아까 전담 스타일리스트는 박해일 씨가 옛날보다 깊어진 느낌이라고 말하더라. 지금 봐도 같은 생각이 든다.

내 변화는 관객들이 더 빨리 인식하겠지. 나 자신은 내가 뭐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것처럼. 의상이나 외모에서 변화가 느껴진다면, 분명 필름에도 남을 테지….

-반면 영화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박해일’이 보이진 않았다. 클로즈업 샷이 많아, 배우 본인도 민감하게 느꼈을 듯한데. 이를테면 역할과 사건이 달라도,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나오는 표정이 예전 어떤 영화와 비슷하다든지.

겹치는 게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인지한 부분도 있고. 근데 현장에서 매번 모니터를 확인하면서 “저건 겹쳤으니까 하지 마” 이러기도 힘들잖나. 그런 강박관념이 있으면 사람이 되게 인위적이 된다. 휘도 역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일단 그 친구가 이해됐고, 그가 겪는 심리를 겪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휘도가 되지만, 휘도가 약간은 내 모습을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한 거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시도했다면 좀 어색해졌을 거다. 아주 대단한 연기가 나왔을 수도 있고. 현재로서는 ‘박해일’이라는 사람 안에서 계속 변주해 나가는 중이다.

-불효자였던 휘도는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를 지켜내려고 애쓴다. 돌아온 탕아 같은 느낌이어서 애틋했다.

엄마 역을 맡은 김민경 선배님은 실제 촬영 때도 나를 항상 지켜봐주셨다. 마치 아들을 보듯이. 우리 어머니의 40대 때 모습과도 비슷해서 낯설지 않았다. 처음에 휘도 심리도 딱 10대 반항아다.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한테 화내고, 잔소리 듣기 싫어하고. 다 한 번쯤은 경험해 봤으니까, 공감하는 거지.

-<심장이 뛴다>는 줄곧 그 엄마와 자식 간의 감정을 자극한다. 마지막에는 약간 ‘울리는 영화’로 밀어붙인다는 인상도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지금 결말이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 그럼 다른 어떤 길이 있을까. 휘도가 살아온 삶이 순탄치 않잖나. 아무리 자기 부모가 죽을 지경에 놓였다 한들, 사람이 쉽게 변할까? 애초에 엄마를 구할 감정적인 여유가 없어. 살기에 너무 바빠. 그럼 휘도의 심경 변화도 없는 거다. 더 건조하게 가는 거지. 근데 뉴스에 나오는 현실이 더 센 줄은 알지만, 굳이 극장에서까지 메마른 결말을 봐야 할까. 관객의 삶에 보탬도 되고, 감정 순화도 되면 좋잖아. 결국 선택은 감독님이 하셨고, 내 입장에선 그 상황에서 어떻게 최대치를 보여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말씀하신 그런 인상이 깔려 있다는 걸 감안하고 말이다. 보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궁금하다. 인물들에게 얼마나 설득될까. 그런 부분을 고민했다.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가 보다. 필모그래피를 봐도, 촉이 좋달까? 지금 잘된 감독들의 데뷔작, 초기작에 많이 출연했다. 현장에서 대화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겼을 법도 하다.

‘촉’을 쓰는 건 아니다. 크하하! 감사한 표현인데, 첫 장편을 만드는 감독과 함께했을 때의 긴장감과 에너지가 좋더라. 나 자신을 시험할 수도 있고, 감독의 철학이나 시선을 수용해 가며 하나씩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최근에 흥미를 가진 감독이나 영화가 있나?

<카모메 식당>(2006)을 얼마 전에 봤다. <안경>(2007)은 좀 오래 전에 봤고. 그런 톤의 영화가 국내에는 없잖아. 새로운 분위기고 흥미로웠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톤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그런 ‘지점’의 영화가 제작돼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영화뿐 아니라, 관객이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선, 나부터 움직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지.

-조성희 감독의 저예산 영화 <짐승의 끝>에도 출연했다. 2010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에서 봤는데, 신인 감독의 작품치고 독특하더라. 박해일 씨의 역할도 무척 기묘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지만, 굉장히 이질적이다. 밴쿠버나 두바이 같은 해외 영화제에서도 반응이 흥미로웠다고 하더라. 국내에선 생소한 톤인데, 출연하면서도 희열감이 있었다. 조성희 감독이 상업 장편 데뷔를 하면, 분명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과 조성희 감독은 모두 여성 감독이다. 처음 데뷔할 때 배우 ‘박해일’의 이름을 알린 작품도 대개 여성 감독의, 혹은 여성적인 감수성의 섬세한 작품이었다. 지금은 남자 감독들과 굵직한 작품을 주로 하는데, 당시의 연기 톤으로 복귀하고픈 욕망도 있나?

데뷔 초기에는 선택을 받는 입장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내가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관객에게 이해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해 왔던 것 같다. <질투는 나의 힘>(2002)이나 초기 출연작이 나한테 정말 힘이 된다는 건 알지. 깊이가 있고, 캐릭터도 나하고 맞는다. 연기해 봤으니까. 작가주의 감독님과의 작업들이 소중한 걸 겪어봐서 안다는 거다. 반면에 지금은 내가 더 공감할 수 있는 역할로 관객과 소통해 보고 싶다. 그런 시기인 것 같다. 아직 나한테는 시간이 충분하고, 계속 다양하게 시도하고 싶다.

-인간 박해일로서의 꿈은 뭔가? 이건, <이끼>에서 함께한 정재영 씨가 궁금해 한 질문이기도 하다.

아, 정말 형다운 질문이 아니다. 크하하! 잠깐만 생각해 보자면….(고민 중) 예전에 <무비위크> 인터뷰에서 초기 자본금만 있으면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해서 전기를 팔고 싶다고 했잖아? 그거 진짜다. 꽤 거금이 필요해서 포기했지만, 초기 자본금만 마련되면 꾸준히 수입이 난다니까?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쓸데없는 얘긴가? 크하하! 재영 선배가 “에이, 괜히 물어봤네!” 그러시겠다. 근데 진짜 중요한 얘기다. 올해 겨울 전력 사용량이 엄청나다는데, 거기 보탬도 되고. 지금이 전기 없이는 못 사는 사회잖아.

-혹시 집에서 친자연 태양열 전기 쓰시나?

아니, 그럴 여건이 안 된다. 집에 햇빛이 많이 안 든다. 그럼 풍력 발전이라도 해야 하는데, 바람도 잘 안 들어오고. 크하하! 어디 사냐고? 그냥, 반지하는 아니다! 크하하하!



무비위크  2010-12-30   나원정 기자